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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둑 계획 === > 우리가 물러나는 순간 강물은 아바나까지 밀려올 것이다. 떠나려면 먼저 둑을 쌓아야 한다. >---- > 세묜 I. 바라노프 국방인민위원장, 1988년 3월 정치국 회의 철군 방침에 가장 강하게 반발한 것은 군부였다. 9년 동안 싸운 전쟁을 협상으로 끝내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었고, 총참모부는 나지불라 정권이 철군 뒤 몇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. 군부는 1987년 10월 서명된 센츄리움 궤도협정에도 불만이 컸다. 부분궤도 폭격체계 메치의 발사대 18기를 해체해야 하는 이 협정은 군 안에서 '무장 해제 조약'이라 불리고 있었다. 1988년 3월 국방인민위원장 세묜 I. 바라노프와 총참모장 올레크 P. 스미르닌은 정치국에 「고랜드 민주공화국 방위 지원에 관한 계획」을 제출했다. 군 내부에서 「둑」(Плотина)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이 계획의 골자는 세 가지였다. 첫째, 철수 대상 부대 가운데 약 5만 명을 '고랜드 방위 지원단'으로 재편해 고랜드 정부군 소속 고문단의 명목으로 남긴다. 둘째, 고랜드 북부에 K-14 중거리 탄도미사일 연대 3개를 배치해 철군 이후 유고랜드와 루이나가 고랜드 내전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도록 억지한다. 셋째, 이 모든 것을 제네바 협정이 허용하는 동맹국 무기 공급으로 처리한다. 계획에 따라 편성될 방위 지원단의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. > 전략군: K-14 중거리 탄도미사일 연대 3개 (발사대 24기, 미사일 36발) > 육군: 차량화소총사단 2개, 공수연대 1개, 공병·통신 부대 > 방공군: 지대공 미사일 여단 2개, 전투기 연대 1개 > 해군: 산마르코 항 경비를 위한 초계함 전대와 수송선단 > 고문단: 고랜드 정부군 각급 부대에 배속될 군사고문 약 3천 명 K-14는 제7설계국이 1970년대 후반 실전 배치한 이동식 중거리 탄도미사일로, 사거리는 약 2,500km였다. 저장성 추진제를 써서 명령 후 30분 안에 발사할 수 있었고, 핵탄두 한 발을 싣도록 설계되었다. 방위 지원단의 미사일은 사비에트군이 직접 운용하고 발사 권한도 크라슬리스크에 두도록 되어 있었는데, 서류상으로만 고랜드 정부군 소유로 넘어갔다. 카멘스키는 처음 이 계획에 반대했다. 그러나 군부는 둑 계획을 철군 동의와 궤도협정 비준의 조건으로 내걸었다. 비준이 좌초하면 카멘스키가 가장 공을 들인 대외 성과가 무너질 판이었다. 3월 24일 정치국은 둑 계획을 승인했고, 최고인민평의회는 4월 26일 궤도협정을 만장일치로 비준했다. 연구자들은 둑 계획을 '철군과 궤도협정을 얻기 위해 카멘스키가 치른 값'으로 본다. 입안자들이 말한 미사일의 목적은 공격이 아니라 억지였다. 고랜드 북부에서 발사한 K-14는 유고랜드 전역과 루이나 남부 해안의 해군기지, 수도 벨포르까지 6~8분 안에 닿을 수 있었고, 이 짧은 경보 시간이 루이나로 하여금 철군 이후의 고랜드에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. 그러나 루이나에서 보면 그것은 억지가 아니라 기습 능력이었다. 조기경보위성이 발사를 포착하더라도 대통령에게 남는 판단 시간은 몇 분밖에 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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